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자 지구 (문단 편집) === 근현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파일:가자 영국군.jpg|width=100%]]}}} || || 1918년 가자에 주둔한 영국군 || 1893년 술탄 [[압뒬하미트 2세]]는 가자의 우물들을 복구해주었고, 같은해 가자에는 알리 칼릴 샤와 의장 하의 첫 지역 의회가 설립되었다. 1906년 그의 아들 사이드 앗 샤와는 오스만 당국에 의해 가자의 첫 근대적인 시장으로 임명되었다. 팔레스타인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가자는 경제 & 정치적으로 샤와 / 후세이니 / 수라니와 같은 몇몇 강력한 가문들의 수중에 있었다. 1903년과 1914년 도시는 파괴적인 지진을 겪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이집트의 영국군은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하기 위해 가자를 공격하였으나 2만 오스만-독일 군의 우주방어에 번번히 격퇴되었다. 1917년 봄의 1, 2차 전투 후에 가자-베르셰바 전선이 동쪽에서 뚫리며 병력이 5,000으로 줄어든 오스만 군은 3차 전투 중인 11월 7일 가자에서 철수하였다. 이렇듯 영국군은 5,000에 달하는 많은 희생을 치르며 3번의 시도 끝에야 가자를 점령하고 예루살렘 전여에 나설 수 있었다. 당시의 포격으로 가자 시가지는 크게 파괴되었으며, 대사원과 전통 시장 등 여러 중세 건물들이 피해를 입었다. 영국의 위임통치기에 더 많은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유입되며 아랍-유대 갈등이 폭발하였다. 1929년 팔레스타인 봉기 시에 가자의 유대인 구역은 파괴되었고, 50여 가구의 유대인들 중 대부분이 떠나갔다. 1930년대와 40년대 가자는 리말, 제이툰 등 구역들의 신설로 확장되었고 봉기 중 파괴된 지역들이 국제 단체 및 선교단의 자금 지원으로 복구되었다. 가자는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당시 팔레스타인의 아랍계 정부인 범 팔레스타인 정부의 소재지이었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는 전쟁 당시 요르단이 자국 영토로 합병했기 때문이다. 당시 요르단 국왕 [[압둘라 1세]]는 팔레스타인을 자국 영토로 보았지 독립국으로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이후 범 팔레스타인 정부는 사실상 이집트의 [[괴뢰국]]으로 전락하였다. [[1959년]]부터는 이집트가 범 팔레스타인 정부를 해체하고 아예 직접 지배하기도 하였다. [[제3차 중동전쟁]]의 결과로 [[1967년]]부터 이스라엘이 지배하였고 봉기 끝에 [[1993년]] 자치가 승인되었다. 1980년대초 이래, 가자 지구에도 유대인 정착촌이 건설되어 한때는 21개나 되었지만, [[2004년]]에 [[아리엘 샤론]] 총리가 가자 지구의 정착촌을 모두 철수시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고, 그 이듬해 유대인 정착민 8,000여 명을 이스라엘로 모두 철수시켰다. 그러나 지금도 이스라엘의 통제 때문에 장벽이 설치되고 바닷길이 막히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가자 지구에는 물과 지원을 포함한 어떠한 물자도 못들어간다.[* 사실 그 이전에도 이스라엘에서 가자를 봉쇄했고 물자가 들어간다해도 유대인 정착촌에만 갔지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제대로 가지도 않았다. 전기만 해도 봉쇄 이전에 유대인 정착촌은 항상 전기가 들어왔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하루에 8시간밖에 못쓸만큼 부족했다.] 이집트 역시 테러분자 단속과 하마스 견제를 이유로 국경을 열어주지 않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 현지인에게는 40일에 3~5일 꼴로 불규칙하게 열어주며 이스라엘처럼 물자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이집트와의 무역길도 막막해서 가자 지구 주민들은 비밀 땅굴을 파서 그 통로로 밀무역을 하는 처지다. 게다가 이집트 국경 너머 [[시나이 반도]]는 IS의 활동으로 인해 이집트 정부가 토벌에 나서면서 시나이 반도의 무장단체들과 이집트 군경과의 교전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어 가자 지구보다 더 위험한 지역이며, 이로 인해 국경 개방 일수도 줄어들고 있다. 이스라엘인을 제외한 외국인은 상시 출입이 가능하지만 이집트-팔레스타인 양측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으며 2000년 이후부터 관광 목적으로는 허가가 나지 않는다. 다만 이집트는 같은 아랍권이라 이스라엘측보다는 통과가 쉽다보니 구호 단체나 기자들은 이곳으로 들어간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또한 재정난과 하마스와의 갈등 때문에 제대로 된 지원을 못하는 처지다. 이때문에 가자 지구는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으며 인세지옥이라 할만큼 매우 열악해 국제기구들의 원조에 의지하는 형편이다. [[파일:/image/001/2010/05/31/GYH2010053100150004400_P2.jpg]] 특히 2010년 5월 튀르키예 국적의 국제구호선이 가자 지구로 들어가려는 것을 이스라엘군이 공격했던 사건은, 이 과정에서 튀르키예인 8명과 미국인 1명이 사망하면서 튀르키예가 이스라엘과 단교하고 이스라엘 대사를 추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워낙에 튀르키예와의 관계가 이스라엘에 중요하기 때문에 사과하고 관계회복을 꾀하고 있지만, 튀르키예에서 반이스라엘 감정이 심하고 튀르키예 대통령 에르도안부터가 반이스라엘 성향이기 때문에 튀르키예가 이스라엘을 보는 감정은 매우 좋지 않다. 레바논이나 프랑스 등의 구호선들도 접근할 때마다 이어지는 구호선 나포와 공격, 국제인권단체 운동가 추방 등은 2010년대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UN도 예외가 아니라서 가자 지구의 UN 시설을 파괴하고 구호물품 트럭들도 박살내서 UN이 가자 지구 구호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 점에서 UN에서 심한 비난을 받았으나 미국의 비호로 무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